의료분쟁의 변화양상과 의료소송의 절차

법무법인 의성 김연희 변호사

1. 분쟁의 다양화
분쟁(紛爭)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말썽을 일으켜 시끄럽고 복잡하게 다툰다는 의미이다. 분쟁이라는 용어가 여기저기에 쓰이기는 하지만, 의료분쟁은 특히나 분쟁이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현실과 매우 일치한다. 의료라는 것이 워낙에 상식의 분야가 아니다 보니, 일반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수없이 발생하는데, 의료인은 이것을 불가항력이라 말하지만, 환자들은 의무기록이 허위로 기재되었거나 의료진이 무엇인가를 숨긴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허위사실을 밝히기 위해 민사에만 그치지 않고 형사고소에 이르기도 하며, 그 여파로 형사고소 건수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결국 의료사고라는 한 가지 사실관계가 분쟁으로 치달으면, 각종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데, 최근에는 보건소나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에 민원제기 사례마저 많아져 그야말로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는 양상이다. 각종 보건의료법령의 제재규정으로 인해 의료기관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현행 제도하에서는 구태여 환자측에서 직접 의료기관에 찾아와 소리쳐 따지거나 기물을 손괴할 필요성도 줄어들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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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회와 가치관 변동에 따른 분쟁의 변화양상
예전에는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된 이상 돈으로밖에 회복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쪽으로 분쟁의 양상이 변화하는 듯하다. 좋은 쪽으로 말해서 이성적인 태도로 변화중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할 때는 사과를 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면 합의나 조정이 성사되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치료비나 위자료 등 합계액을 산정하여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제시해야만 합의가 된다. 각종 물가가 다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금도 오르는 것이 당연한 현상일 수 있지만, 문제는 사과를 하면 금액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 금액이 늘어나게 되는 기현상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양보를 하는 측에서 좀 더 참고 양보하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내가 양보하면 상대방도 양보하리라는 섣부른 기대를 가지고 합의에 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분쟁은 빨리 종결될수록 좋지만, 수용가능한 범위 내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또 다른 분쟁을 불러올 수 있음을 명심하자.

3. 소송의 절차 (민사절차, 형사절차)
이제부터는 평생 겪지 않으면 좋을 소송에 관한 절차와 대응에 관한 것이므로 재미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민사소송은, 원고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 법원에서 피고에게 소장을 송달하면서 1달 이내에 답변을 하라고 안내해준다. 통상적으로 피고가 답변을 하면 이후 변론(준비)기일이 열리고, 앞으로 어떻게 재판을 진행할 것인지 의논을 하게 되는데, 의료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절차이다. 판사는 의사가 아니기에 전문가인 의사의 감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간혹 의사출신 판사가 사건을 담당하게 되더라도 결국 감정절차는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감정은 진료기록감정과 신체감정으로 이루어지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만 보더라도 의사마다 지식의 정도나 의료적 처치에 대한 소신이 다양하여 누가 감정을 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어 객관적인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본인은 객관적이라 확신하면서 감정을 하겠지만 다른 의사가 보기에 주관적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따라서 좀 더 객관적인 감정을 이끌어 내려면,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질문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참고로 의사가 지켜야 할 주의의무의 기준인 '진료 당시의 임상의학의 실천에 있어서 의료수준'은 국내 의과대학의 표준적인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의학수준으로 판단한다. 의학교과서, 논문, 학회지 등 주장사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의학적 근거자료가 외국문헌인 경우 번역문을 첨부해야 한다. 감정 신청서의 질의사항은 그 전제사실로 사건의 경과에 대해 간략히 기재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해당 전제사실은 당사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재판부의 소송지휘로 객관적 사실만을 간단히 요약, 정리하기도 하지만, 재판부나 판사마다 다르므로, 당사자의 주장사실이 그대로 기재되어 감정신청서가 송달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의학적 기초사실에 대한 장황한 질문으로 인해 회신이 지연되기도 하고, 불확정한 사실에 대한 개괄적인 사항이나 가정적인 사항 또는 지엽말단적인 사항 등의 질문으로 인해 모호한 답변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점을 주의해야 한다.
형사소송은 환자쪽이 소송을 제기만 하면 돌입하게 되는 민사와 달리, 검찰에서 범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기소를 해야만 진행되는 절차라는 점에서, (형사소송 절차도 중요하지만) 기소전 수사단계가 매우 중요하다. 만일 의료과실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입장이라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수사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절차는 민사와는 달리 질의사항을 알 수는 없지만 통상적으로 수사단계의 감정질의사항은 피의자(의사)가 항변한 내용이 의학적으로 사실인지, 고소인(환자)이 주장하는 내용이 의학적으로 볼 때 무슨 의미인지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수사기관에서 감정질의를 할 때 의학적인 내용을 질의하기 위한 전제사실에 환자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적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민사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점을 앞서 언급함). 따라서 조사를 받기 전 미리 의사측 주장에 상응하는 의학적 자료를 준비하고, 수사기관에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감정사항 질의를 할 때 의사측 질의도 함께 보내달라고 제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는 의학을 잘 모르는 수사관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도 있다. 한편, 진료기록부는 전문용어로 작성되어 있거나 의료인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약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어서 번역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번역문을 별도로 작성하여 참고서류로 제출하거나 진료 기록 각 해당 면에 해당 번역문을 첨부하여 제출하는 것도 좋다. 중요한 부분은 반드시 형광펜을 칠해서 수사관이든 감정인이든 누락하지 않도록 눈에 띄게 표시를 하여야 한다. 의학문헌을 제출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수사단계에서 막지 못하고 기소가 된다면, 소송단계에서 검사의 입증을 적극적으로 탄핵하여야 한다. 수사단계에서 이루어진 감정에 대해 부동의를 하고, 소송단계에서 다시 감정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과실이 명백하고 과실을 인정한다면 형사합의를 하는 것도 정상참작이 되니 고려해볼만하다.

4. 마치며
최근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에 따라 유기적으로 의료분쟁의 모습도 변하였을 뿐 독자적으로 다양화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이득이 되는 방법으로 분쟁이 해결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채널을 원할 수밖에 없어, 앞으로 민사든 형사든 행정이든 분쟁이 줄어들 이유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분쟁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분쟁이 일어났을 때의 대처방법을 알아두는 것도 의사라는 직업인으로 살면서 갖추어야 할 필요지식이 되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