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락사의 정의
안락사(Euthanasia)는 단어 그대로 “편안한 죽음”, “좋은 죽음” 또는 “고통없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치유될 수 없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회적 통념을 반영하여 최근에는 안락사라는 용어를 “한 사람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위 (action) 또는 무위 (inaction)로 그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함”이라고 정의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안락사의 윤리 기준
의료계에서 안락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따지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최선의 이익’, 즉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될 수 있는가가 될 것입니다. 당사자가 아닌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생명을 종결시키는 것은 곧 살인이고, 이는 나치(NAZI) 시절 안락사의 이름으로 자행된 악행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나치의 프로파간다는 좌파, 장애인, 정신질환자, 만성 질환자들을 ‘살 가치가 없는 생명’(Lebensunwertes Leben)으로 치부하고 말살함으로써 전체 사회의 이익, 특히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선동했습니다. 안락사가 당사자의 이익이 아닌 다른 목적을 지향하게 될 때 나타나는 위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안락사의 분류
이처럼 안락사를 고려할 때는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지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환자에게 최선이 이익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을까? 그 판단 방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안락사가 분류될 수 있습니다.
자발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는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알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가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할 능력이 있으며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전제(자율성의 원칙)를 품고 있습니다. 이 때 환자가 스스로 죽을 능력이 없는 마비상태에 있거나 죽음의 과정에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의사가 개입하게 되면 이를 의사조력자살 (Physician-assisted Suicide)라고 합니다. 최근 스위스 소재 비영리단체 Dignitas를 통해 죽음을 택한 한국인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는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있지만 동의 하지 않은 사람에게 안락사를 실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당사자는 살기를 원하는데 그 가족들이 안락사를 요구하는 경우를 임상현장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데, Locked-in Syndrome 환자 경우가 그러합니다. Locked-in syndrome에 관한 여러 연구는 그런 상태의 환자라 할지라도 생존의 욕구를 가지며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가족들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환자가 죽음을 원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이나 경제적 이유를 들어 안락사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를 토대로 당사자의 의사를 거슬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은 정당화되기 힘듭니다. 본인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죽음을 야기하는 것은 결국 살인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자발적 안락사(Non Voluntary Euthanasia)는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선택할 능력이 없는 경우에 이루어지는 안락사를 말합니다. 신생아나 중증의 정신불구자, 노인성 치매환자나 노쇠한 환자, 혼수상태에 있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해당합니다. 이 경우에도 본인의 동의를 확인할 수 없기에 윤리적으로 허용되기 힘듭니다.
안락사는 의료진이 제공하는 치료 행위에 따라서 적극적 안락사(행위)와 소극적 안락사(무위)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야기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취하는 것으로 치사량의 약물 주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가망 없는 퇴원(Hopeless discharge)이나 기관 삽관 거부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적극적 안락사는 현재 네덜란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되고 있으며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는 널리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소화기 생각에서는 안락사의 개념과 윤리적 기준, 그리고 환자의 자발적 의사 대한소화기학회 윤리위원회 여부에 따라 혹은 안락사를 유발하는 행위 여부에 따라 분류하여 보았습니다. 다음 소화기 생각에서는 이런 안락사의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적용하기에 어려운 점과 연명의료 중단과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